력대 명가 취옹정기 (1)

발표 날짜:2021-11-08 찾아보기 횟수:1905



송. 소식 초서


송원우 6년 (1092년), 추주지주왕조는 식에게 위탁하여 ≪ 취옹정기 ≫를 써줄것을 부탁하였다.소식은 대범하게 응락하여 초서 ≪ 취옹정기 ≫와 해서인 ≪ 취옹정기 ≫를 썼다.그러나 초서 ' 醉翁亭 수기 라 책 으로 뒤 원고 장기 의심 을 불 러 불 을 元代 赵孟 ð « – ¯, 학자, 宋广 沈周 등 모두 김 기동 했 기 때문 이다명나라 륭경 5년 (1571년)에 이르러서야 문연각대학생 고공이 그의 사위인 류순으로부터 언릉 (오늘의 하남성 언릉현)에 돌을 륵석시키고 초서장권의 문건이 궁중에 흘러들어 화류실되였다.청조 강희 31년 (기원 1692년)에 언릉비가 이미 마모되여 분명해지지 않았기때문에 고공의 후대들은 언릉탁본륵석을 신정 (오늘의 하남성 신정시) 가사에 의탁하였다.


언릉의 소식 초서본 ≪ 취옹정기 ≫ 비석은"언릉비"라 불리우는데 원래 비석은 산실되였으나 지금은 탁본만 보존되여 언릉당안관과 허창시당안관에 소장되여있다.신정 고공사당의 소식 초서본 ≪ 취옹정기 ≫ 비석은"신정비"로 불리는데 1959년에 정주박물관에 의해 수집되여 지금까지 보존되고있다.1997년 랑아산관리위원회는 동락원 (구양수기념관)을 건설하여 력대의 명가서인 ≪ 취옹정기 ≫를 수집하고 소식 초서 ≪ 취옹정기 ≫를 복제하였다.